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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답사]

[4편] 우하량 박물관은 말하고 있다 '너희는 중국의 아류'라고 - 2019 국외 답사기 우하량(2)

2019 국외학술답사기


4편 "우하량 박물관은 말하고 있다 '너희는 중국의 아류'라고"

  

▲ 우하량유지 박물관의 전시안내도.

  

미니카는 눈 깜짝할 새에 우하량 박물관 앞에 우리를 내려주었습니다. 우하량 유지는 1천 5백만 평의 꽤 넓은 지역이지만 이안에서 총 20군데, 16지점이 곳곳에 퍼져있는 것이면 생각보다 각 지점과 지점사이는 그다지 멀지 않은 것입니다. 

 

다시찾은 우하량 박물관은 3년 사이에 리뉴얼이 되어있었습니다. 전시 내용은 이론을 곁들여 설명하면서 더욱 체계적이 되었고, 유물들도 (비록 복제품이었지만) 많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전시내용을 표현하는 방법도 조형물, 영상, 터치스크린, 홀로그램 등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활용하여 꽤나 내용을 이해하기 쉬웠습니다. 전반적으로 공을 많이 들였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정말 중국은 요서지역에 사활을 걸었구나.. 하는 인상을 지울 수가 없었습니다. 

 

▲ 우하량 박물관 입구에서 상영되고 있는 영상물. '문명서광'이라는 글자가 유난히 눈에 들어온다. 

 

박물관 입구에 들어서자 마자 '문명서광'이라는 커다란 글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우리나라 말로 하면 '문명의 시작' 정도로 해석을 해 볼 수 있을 텐데요. 단어만으로, 그것도 그래픽과 함께 표현을 해 놓으니 의미가 더욱 강렬하게 다가옵니다.  

 

 

▲ 우하량유지 박물관 초입에 전시되어있는 요서지역 고고학발굴과 연구사.

 

 

▲ 요서지역 신석기 문화들을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전시내용. 각 시기별로 문화내용과 발굴을 주도한 고고학자의 사진이 함께 전시되어 있다. 

 

 

▲ 홍산문화를 4대 유형으로 나눈 유국상교수의 이론을 받아들여 우하량 박물관에 전시를 해놓았다.   

 

우하량 박물관의 전시 내용은 전반적으로 2가지 정도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들어가자마자 있는 원형의 둥근 홀에는 요서지역의 신석기문화 발굴역사와 이를 주도하고 이론을 만든 고고학자들의 소개, 그리고 홍산문화에 대한 집중적인 설명이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우하량 각 지점에 대한 구체적인 유물 전시가 이어집니다. 전체적인 내용을 먼저 보여주고, 뒤이어 '그래서 우하량은~' 하면서 구체적인 내용을 설명합니다. 

 

그 전에는 '우하량'이라는 유적지에 집중이 되어 있었다면, 리뉴얼된 내용은 '우하량'을 넘어 '우하량'을 중심으로 홍산문화, 나아가 동북지역의 신석기 문화를 모두 아우르고자 하고 있었습니다.

 

 

▲ 우하량 각 지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전시관의 시작점. 우하량을 '문명성지'라 칭하고 있다. 

 

요서지역의 신석기 문화에 대한 총론을 설명해 놓은 곳을 지나 이제 우하량 각 지점을 보여주는 전시관으로 이동했습니다. 전시관으로 들어가는 입구에는 우하량을 '문명성지(文明聖地)'라고 해 놓았습니다. 

 

20세기 고고학의 발달로 인하여 요서지역에서 황하문명보다 더 오래되고 수준 높은 문화가 있었다는 것이 증명되자, 중국은 중국문명의 시작점을 기존의 황하문명에서 요서지역으로 바꾸는 작업을 하였다는 것은 앞에서도 계속 이야기하였습니다. 그 중 가장 대표적인 유적지인 우하량을 '문명성지(文明聖地)'라며 그 위상을 한껏 높이는 것이지요. 입구의 대형 여신 조형물과 향로, 절방석 뿐 아니라 그 명칭에서도 우하량은 문명이 시작된 곳이자, 중화여성시조가 발견된 성스럽고 신비한 지역으로 바뀌고 있었습니다. 

 

전시 내용을 몇장 소개합니다. 

 

▲ 우하량에서 발굴 된 채도를 시기별로 정리해 놓은 전시물. 시기에 따라서 어떻게 변화했는지를 잘 정리해 놓았다. 

  

 

▲ 우하량유지 핵심 발굴지를 지형과 함께 표시한 부조. 빨간색 전등으로 표시된 부분이 전면 발굴을 한 곳이다. 오른쪽의 4개의 작은 부조는 우하량 지점 중 발굴을 한 2(좌상), 3(좌하), 5(우상), 16지점(우하)의 발굴 평면을 따로 부조로 만들어 걸어 놓았다.

 

 

▲ 우하량 박물관 전시 내용 중 일부. 발굴 현장 사진을 많이 활용하여 생생함을 더했다. 

 

 

▲ 우하량 박물관 전시물 중 일부. 16지점 4호묘의 발굴당시 모습을 그대로 옮겨놓고,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우하량 각 지점에 대한 설명도 보는 즐거움이 있었습니다. 특히 이미 발굴한 2지점, 3지점, 5지점, 16지점에 대해서는 위 사진과 같이 사람뼈가 어떻게 놓여있었고, 부장품인 옥기는 어떤 형태로 놓여 있었고, 몇개가 나왔고, 여기서 나온 가장 대표적인 옥기는 무엇인지까지 아주 자세하게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 무덤 조형물 위에 설치된 홀로그램 영상. 제사장이 기공동작을 하며 의식을 행하는 모습이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쭉 둘러보던 우리의 발걸음을 잡아 챈 것이 있어습니다. 지금 저 홀로그램 영상이 보이시나요? 저 홀로그램영상은 제사장이 의식을 행하는 모습을 표현 한 것인데요, 기운을 타고 움직이는, 기공을 하는 모습입니다. 

 

홍산문화의 본질은 선도문화, 즉 기(氣)문화 입니다. 한민족의 오랜 역사 전통 속에서 세상을  '氣'로 이해해왔습니다. 우리는 지금 보이는 현상세계 속에서 살고 있지만, 이러한 세상의 본질은 보이지 않은 에너지 기(氣)이며, 기(氣)의 움직임이 현상을 창조해낸다고 믿었습니다. 간절하게 바라면 세상이 움직인다는 말은 이러한 원리에서 나온 것이지요. 

  

 

▲ 밝문화를 담고 있는 고조선 시기 청동거울 '다뉴세문경'. 뇌신(환웅)의 번개문을 상징하며, 주로 제천의례시 사용했다. 조양 십이대영자유지 출토, 요녕성박물관 소장. 

 

한민족에게 '기(氣)'는 세상의 본질이기에, 이를 세상을 구성하는 '근원의 생명력'으로 보았고, 좀 더 구체적으로는 '미세한 소리와 파동을 지닌 빛'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한국사 전통 속에서 '밝문화', '밝음', '빛'을 나타내는 상징이 많은 것은 이와 같은 관점이 있기 때문이지요. 이러한 인식은 원이나 소용돌이 등의 문양으로 나타나기도 하였습니다. 

 

 

▲ 우하량 2지점 4호총에서 발굴된 소용돌이문양 채도항아리. 밝문화를 보여준다. 왼쪽은 우하량 유지 박물관에 전시되어있는 복제품이며, 오른쪽이 실제 발굴된 것이다. 진품은 현재 요녕성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한민족의 이러한 세계관은 사람을 바라보는 관점, 인간관에도 투영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그 내면에 '근원의 생명력'을 가지고 있으며, 비록 현상세계에서는 감정에 휘둘리고 욕심을 부리는 등 깨달음이나 성스러움 등과 멀게 보일지라도 다시금 '근원의 생명력'을 회복할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이 있는 존재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이런 '근원의 생명력'의 회복은 수행(성통)과 대사회적 실천(공완)을 통해 다다를 수 있는[조천(천화)], 그렇기에 인간은 희망적이고 가능성이 있는 긍정적인 존재라고 하였지요. 

 

 

▲ 여신묘에서 발굴된 여신상 파편들을 토대로 복원한 여신상의 모습. 반가부좌를 하고 양손을 복부에 올린 모습이 영락없는 선도수행을 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수행과 대사회적 실천을 강조하였습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을 잊지 않기 위해서 눈에 보이지 않는 '기(氣)'를 눈에 보이는 인격화된 존재로 표현하여 곁에 두었지요. 눈에 보이는 인격화된 존재는 주로 기(氣)가 가진 근원성, 창조성 등의 성질에 빗대어 여성성을 가진 존재, 여신(마고, 삼신할미)으로 표현되었습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것이 각종 여신상(女神像)이며, 수행의례를 치른 것이 바로 제천(祭天)의례입니다. 

 

즉, 한국인들에게 제천(祭天)의례는 단순히 눈에 보이는 천지신이나 조상신에게 기복을 위해 드리는 것이 아닌, 내 안에 담겨있는 근원의 생명력을 회복하고자 하는 수행의례이자 자기자신에게 들이는 정성이었던 것입니다.  

 

이런 세계관으로 바라볼 때, 선도문화를 본질로하는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지, 우하량에 세워진 여신묘와 여신상을 이해할 수 있으며, 나아가 홍산문화를 위시한 요동, 요서지역의 신석기, 청동기 문화를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  

 

 

▲ 중국이 홍산문화의 후속 문화로 바라본 상나라(은나라)시기의 청동기. 객좌현 청동기교장갱에서 출토된 것으로 현재 요녕성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런데 중국은 홍산문화의 본질인 '선도문화'에 대한 파악 없이 홍산문화의 주체는 先商族(상나라 이전 민족), 홍산문화의 성격을 ‘先商문화(상나라 이전 문화)’로 규정, 홍산문화를 중국 고대왕조인 상나라(은나라) 계통으로 바라보았습니다. 

 

이러한 관점은 홍산문화가 당연히 중화문화와 연결되어야 한다는 '중화주의적(중국중심의 세계관)' 인식에서 시작된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진행된 것이 동북공정을 비록한 각종 역사왜곡작업이지요. 그러나, 중국의 이런 역사공정은 '홍산문화가 중국의 것이다'라는 결론을 정해놓고 거기에 증거를 끼워 맞추는 방법들이었습니다.

 

 

▲ 우하량유지 박물관의 전시내용. 홍산문화를 오제전설과 관련지은 내용이다. 중원 앙소문화의 주체를 신농씨 집단, 대문구문화와 양저문화의 주체를 우(이)하집단, 홍산문화의 주체를 황제집단으로 표시, 세 문화가 교류를 하며 중국문화를 발전시켰다는 내용이다. 이것은 중국학계의 정리된 입장으로, 요녕성 박물관에도 같은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그러다보니 중국 측의 홍산문화에 대한 해석은 종교와 제사, 정치권력을 장악한 특수계층인 전문적인 사제(司祭)집단이 출현, 단·묘·총 이나 옥기를 중심으로 하는 ‘예제禮制문화’를 만들었고 이것이 주변으로 퍼져나가 중국문화의 기원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홍산문화유적은 ‘제사(祭祀)’ 유적이며, 옥기는 ‘예기(禮器)’로 제사의식과 관련한 것이기에 ‘제사(祭祀)’ 유물이고, 이를 집전하는 사람은 제사장(祭祀長), 제사의 대상은 ‘눈에 보이는 천지(天地), 조상신’으로 이해합니다. '기(氣)' 또는 보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이해나 내용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런데, 저 홀로그램은 제사장이 '기(氣)'를 느끼며 의례를 행하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중국이 선도문화에 대하여 제대로 아는 것은 아니지만, 형식적으로나마 '기(氣)'에 접근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한국선도의 변형태인 중국도교가 존재하고 있고, 태극권과 같은 기공 수련이 중국에도 있기에 홍산문화의 본질인 '기(氣)'에 대한 것도 원래 중국의 것이었다고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지요. 그렇게 되면 점점 우리 민족은 역사 뿐 아니라 이제 문화적 내용성 까지도 중국의 아류, 방계로 바뀌어 갈 것 입니다.  

 

이렇게 생각이 미치니 체한 듯 명치가 답답하고 저 홀로그램 영상 앞에서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물량공세로 밀어부치는 중국 앞에서 우리는 어떻게 해야할까요?

 

 

▲ 옥의 정신에 대해 설명해 놓은 전시물.  

 

홍산문화는 정말 잘 만들어진 '옥기'가 그 특징일 정도로 '옥기'로 유명하지요. 특히 우하량 유지 에서는 조형미가 뛰어난 옥기들이 많이 발굴되어 당시의 수준높은 문화상을 보여주기도 하였습니다. 요즘에도 홍산문화와 같은 형태의 옥기를 기계가 없이 수공으로 만들려면 한달 정도가 걸린다 하니, 홍산문화기 생활상은 지금의 우리의 상상을 뛰어 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우하량 박물관의 한쪽에는 옥기에 대한 부분을 따로 전시해 놓기도 하였습니다. 옥혼국혼(玉魂國魂)이라는 큰 제목 아래 '옥은 신기로 사용되었고 중화문명은 옥에서 시작했다'고 설명을 해 놓았습니다. 옥기에 담겨있는 상징성이 현재 중화민족의 정체성으로 이어졌다고 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산문화의 옥기는 앞서 이야기 한 기(氣)적인 세계관을 담고있는, 고도의 추상적인 내용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홍산문화의 내용적 실체는 눈에 보이는 현상적 차원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보이지 않는 에너지의 세계, 즉 기의 세계를 이야기하는 선도문화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중국인들이 과연 옥의 스피릿을 제대로 알고 하는 이야기 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하량 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옥기를 몇 개 소개합니다. 

 

 

 

▲ 우하량 2지점 중심대묘에서 출토된 쌍인수삼공옥기(雙人首三孔玉梳背飾). 양 끝에 사람의 얼굴있고 구멍이 3개가 있다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이는 선도문화의 3원을 상징하는 것이다. 왼쪽은 우하량유지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복제품, 오른쪽은 요녕성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것이다.


 

▲ 옥잠용玉蚕蛹. 잠용蚕蛹은 누에의 번데기를 뜻하는 것으로, 이미 홍산문화 시기에 누에를 알고, 그것을 본딴 옥기를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이외에도 홍산문화기에는 누에의 번데기를 외형을 닮은 옥기도 다수 발굴되었는데, 옥기가 제천의기이자, 신기라는 점을 되살려 본다면, 누에를 본딴 옥기가 있다는 것은 당시 누에가 가지는 위상이 높았음을 알 수 있다. 이는 조천(천화)사상을 상징하는 것으로, 보통은 나비 등의 형태로 표현이 되나, 여기서는 나비가 성장하기 이전, 번데기일 때를 나타내고 있다. 역시나 왼쪽은 우하량 박물관 전시물이며, 오른쪽은 요녕성박물관의 전시물이다. 

  

 

▲ 우하량 2지점 1호총 26호묘에서 발굴된 옥기. 발굴당시 묘주의 가슴에 놓여 있었다. 왼쪽은 요녕성 박물관 전시품이며, 오른쪽이 우하량박물관 전시품이다. 


 

 

▲ 우하량 16지점 중심대표에서 발굴된 옥인상. 양미간 인당혈 자리에 표식을 가지고 있으며 두손을 가슴에 모은 수행형 자세를 하고 있는 이 옥인상은, 선도수행을 통해 상단전이 각성된 선인(仙人)을 상징한다. 왼쪽은 우하량유지 박물관의 복제품이며, 오른쪽이 요녕성박물관의 진품으로, 복제품은 옥인상의 가장 중요한 특징인 인당혈 자리 표식을 생략하였다. 이는 이 옥인상을 복제하는 주체인 중국인들이 선도수행에 대한 이해가 짧았기에, 인당혈 자리의 표식의 중요성을 모르고 지나갔으리라 추측된다.  

 

 

▲ 우하량 박물관의 황제를 비롯한 5제의 조형물. 우하량에서 발견된 옥기를 들거나 걸친 모습을 표현하여 중화민족이 받드는 황제 등의 족속과 홍산문화를 연결 시키고자 하는 모습이다.  

 

우하량 유지 박물관의 맨 마지막에는 5인의 남성상이 있었습니다. 홍산문화에서 발견된 옥부를 낀 권장을 손에 들고 옥룡을 목에 건 남성을 중심으로 중국식 복장을 한 남성 4인이 양쪽으로 도열해있습니다. 삼황오제로 일컬어지는, '오제'입니다. 이전에는 신화시대의 인물이라 알려졌으나 그간의 다양한 역사공정을 통해 이제는 역사화 되었습니다. 가운데 남성은 중국인들이 중화민족의 뿌리, 시조로 추앙하는 '황제'입니다. 우리민족으로 따지면 '단군'이라 할 수 있겠네요. 

 

'황제'와 '단군'은 각각 중화민족과 한민족의 시조로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현재의 각 민족에게 인식되고 있는 그 위상은 매우 다릅니다. 중국인들은 오랜기간 곳곳에 자신들이 '염황의 자손'임을 끊임없이 기록에 남기고, 유적과 유물을 만들어가며 지금도 모든 역사공정과 내용을 '황제'로 귀결시키고 있습니다. '황제'를 추모하는 행사를 대대적으로 해도 그 어디서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있지요.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요? 선도전통이 약해지면서 우리의 조상이 '기자'로 바뀐 적도 있었고, 지금은 '단군'을 이야기하면 '사이비'라 하면서 종교성 시비가 걸립니다. 나아가 우파라느니, 국수주의라느니 하며 정치색까지 입혀버리는 현실입니다. 우리나라였다면, 박물관에 단군상을 세워 놓을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중국인들의 지나친 중화주의적 역사인식과 그를 반영한 각종 해석은 그것이 잘 된 것이다, 잘 못된 것이다를 떠나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확고한 인식에서 나왔으며, 그 정체성 인식은 뿌리에 대한 사랑에서 나온 것이라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애정을 여기, 우하량 박물관에서도 확인 할 수 있었습니다. 

 

정말 많은 생각을 하게하는 곳입니다. 

  

 

√ 다음편 예고 :: 3일차 능원 우하량지역 (3) 1지점, 2지점, 임서가는 길 

 

 

등록자

관리자

등록일
2019-11-13 12:00
조회
258

댓글 1

구선미

우하량 박물관 자료사진과 유물에 대한 자세한 설명 감사합니다. 홍산문화시기에 선도문화,기문화에 대해 표현한 옥기와 청동거울, 항아리 등의 유물을 보면, 월등하게 높았던 문화의 수준으로 보입니다. 또한 황제와 단군을 비교하여 설명한 부분도 인상적입니다.단군에 대한 인식이 역사적사실과 조상에 대한 자부심으로 이해되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다음 편도 기대하겠읍니다~
2020-01-04 05: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