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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답사]

[3편] '조상으로 대동단결' 조상 앞에선 이념도 필요없는 중국 - 2019 국외 답사기 우하량(1)

2019 국외학술답사기


3편 '조상으로 대동단결' 조상 앞에선 이념도 필요없는 중국

  

 

 

#1. 우하량 가는 길 

 

오늘은 우하량에 가는 날입니다. 

 

8시에 호텔에서 출발, 우하량유지로 갑니다.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에 엉덩이가 들썩입니다. 

  

▲ 우하량 유지 가는 길. '우하량홍산문화구'라 적혀있다. 우하량 가는 길은 계속 아주 야트막한 오르막길이다. 저 앞에 교통 표지판도 이곳이 오르막임을 보여주고 있다.  



우하량 유지는 홍산문화의 가장 대표적인 유적으로 능원시와 건평현의 경계에 있습니다. 노노아호산 일대 해발 550~650m의 완만한 구릉이 연이어 있는 곳으로, 산등성이 사이로 대릉하의 지류인 우아하(牛兒河)가 있어 우하량이라는 지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1983년 부터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는데, 50㎢(대략 1천5백만평)정도의 넓은 지역에 취락유적은 거의 나타나지 않았고, 대부분 단(壇, 제단)·묘(廟, 사당)·총(塚, 무덤)만 발견되어 이곳이 제천유적(중국식 표현은 제사유적)이자 신성지역임을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은 총 16개 지점으로 편재, 관리가 되고 있으나 이 중 2지점, 5지점, 16지점 만 발굴이 이루어졌으며, 여신묘로 잘 알려진 1지점은 발굴조사 전단계인 시굴조사만 진행되었습니다. 

 

가만히 창밖으로 지나가는 풍경을 바라보면서 우하량의 전 지점이 모두 발굴 되는 상상을 해봅니다. 그러면 지금 알려진 것과 매우 다른 상고사가 쓰여질 수 있지 않을까요?

  

▲ 고도제한을 수동으로 풀고 있는 작업자. 

 

그동안 몇년을 중국 답사를 다니며 느꼈지만 도심, 시골을 가리지 않고 유난히 고도제한이 많습니다. 그간 고도제한에 걸려 수십킬로미터를 돌아가거나 걸어 간 적도 제법있었지요.  

 

우하량 유지로 가는 길에도 떡 하니 고도제한이 있지 뭡니까. 승용차나 승합차만 겨우 지나갈 정도의 높이입니다. 가이드에게 물어보니, 전화해서 올려달라고 하면 올려준다고 하네요. 못 들어 가는 것은 아니구나하는 안도의 마음과 함께 계속 통제 받는 듯한 느낌에 썩 달갑지는 않은 마음이 같이 올라옵니다. 

 

고도제한을 풀어줄 때까지 한쪽 길에 차를 세우고 기다림의 시간이 이어집니다. 조금 지나자 반대편에서 트럭이 한대 오더니 멈춥니다. 그리곤 사람이 내리더니 고도제한 시설물을 타고 올라갑니다. 

 

올라간 작업자는 한참을 뚝딱뚝딱 거리더니 높이제한을 하고 있던 가로봉이 치워졌습니다. 고도제한 높이를 조절하는 것이 수동이었던 것입니다. 당연히 자동으로 올라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왠지 머리가 띵해집니다.

 

#2. 대형 여신 조형물 

  

▲ 여신묘에서 발굴된 여신의 두상을 메인테마로 만든 대형 조형물. 도교 사원에서나 볼 법한 크기의 대형향로와 절방석이 국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여신숭배를 조장하는 분위기를 말해준다. 

 

3년 만에 다시 간 우하량 유지는 조금씩 조금씩 바뀌어 있었습니다. 가장 눈에 띈 것은 바로 이 대형 여신 조형물입니다. 우하량 1지점 여신묘에서 발견된 여신상 얼굴 파편과 똑같이 만들어진 조형물 앞에는 향로와 절방석까지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기억이 나실진 모르겠지만 앞선 2일차 답사기에서 '최근 중국은 요서의 각 지역에서 발견된 여신상, 남신상을 숭배하는 분위기를 국가가 나서서 조장을 하고 있다'고 말씀드렸는데요, 우하량에서 발굴된 여신상을 '중화여성시조'로, 흥륭구유지에서 발견된 남신상을 '중화시조'로 명명하고, 그 출토지를 '성지(聖地)'라 칭하며 향을 사르며 절을 하면서 신앙행위를 할 수 있는 구조물을 갖추고 성역화하고 있었습니다. 사회주의 국가에서는 매우 파격적인 행보가 아닐 수 없습니다. 

 

#3. 소병기 기념관 


▲ 소병기 기념관 입구. 

 

올해 초 답사 기획을 할 때, 저희가 원했던 것은 기존에 알려진 1, 2, 5, 13, 16지점과 2지점 바로 앞에 있다는 3지점까지 모두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현지 조율 과정에서 5, 13, 16지점은 관람을 할 수 없고 1, 3지점은 공사 중으로 6월 말에 오픈한다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3년 전에는 13지점 바로 앞까지 갈 수 있었었는데 말이지요. 

 

다만 여행사측에서는 전시관이 하나 더 생겼으므로, 우하량유적에서는 총 4군데를 볼 수 있다고 답변을 주어서, 나름 생각하기를 3지점이 공사가 끝나서 오픈했구나 싶었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우하량에 도착해보니, 추가로 볼 수 있는 전시관은 3지점이 아니라 '소병기기념관'이었습니다. 고고학자인 소병기의 기념관을 우하량 유적지 내에 세울거라고는 생각도 못했었습니다. 무엇을 생각해도 상상 그 이상인 나라입니다. 

 

▲ 소병기 기념관 입구를 들어서면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소병기 동상.  

 

소병기(蘇秉琦, 1909~1999)는 중국의 고고학자로 중국이 동북공정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중국의 것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하는 기본 이론을 제시한 사람입니다. 

 

중국은 그동안 티벳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는 서남공정, 위구르 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는 서북공정을 진행한 것에 이어, 조선족이 많이 살고 있는 동북지역의 역사를 정리하는 동북공정을 할 수 있었던 바탕에는 '현재 중국의 영토 내에서 일어난 과거의 역사(그 역사의 주인이 한족이 아니더라도)는 현재의 중국의 것'이라는 '통일적다민족국가론'이라는 이론이 있었는데요, 이런 이론을 지지하고 중국이 '통일적다민족국가'가 되어 가는 과정을 설명하여 중국의 역사 왜곡이 가능하도록 해준 이론가가 바로 소병기입니다. 

 

특히 소병기는 우하량 지역에서 발굴된 홍산문화의 사례를 적극 활용하였고, 그 발굴결과를 자신의 '고국(古國)-방국(方國)-제국(帝國)'이론에 대입, 홍산문화는 '원시공동체에 기초하면서도 동시에 그것을 초월한 한층 더높은 단계의 사회 조직형식'인 고국단계에 해당한다고 주장하였었습니다. 

 

따져보면 홍산문화를 비롯한 동북지역의 신석기문화를 중국의 것으로 만드는데 지대한 업적을 세운 사람인거죠. 

 

▲ 소병기 기념관에는 소병기가 입었던 옷, 모자 등 유품도 전시하고 있었다. 

 

우리나라에서 이렇게 국가에서 세운 개인 기념관을 생각해보면 안중근의사, 윤봉길의사나 김구선생님 정도가 떠오르는데요, 고고학자에 불과한 소병기가, 그것도 홍산문화의 대표적인 유적인 우하량 유지 내에 이런 개인 기념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중국이 얼마나 동북공정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지 알 수 있었습니다. 

 

중국의 동북공정은 학문의 영역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그렇다면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응은 어떠하였는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 우하량 유지 내의 이동수단인 미니카.  

 

소병기 기념관에서 나오자 이런 미니카가 우리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전에는 우하량 유지 안의 각 지점을 개인의 차로 움직일 수 있었는데, 이제는 이 차를 타고 정해진 곳으로만 다닐 수 있다고 합니다. 유적지 관리라는 명분 뒤에 자신들이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려는 의도가 읽혀집니다.

 

막상 미니카에 올라타니 마음은 중국의 의도와는 별개로 움직였습니다. 마치 학교 다닐 때 서울대공원으로 소풍을 가면 있었던 코끼리 열차를 탄 것 같아 설레더군요. 차가 달릴 때 마다 뺨을 스치고 지나가는 바람은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듯, 착각을 하게 하였습니다. 

 

 

※ 분량이 많아 3일차는 나누어 올립니다.  

 

√ 다음편 예고 :: 3일차 능원 우하량지역 (2) 우하량 유지 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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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자

등록일
2019-11-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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