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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답사]

[2편] 중국 공산당과 답사팀이 서로 감사해했던 이유 - 19 국외 답사기 조양, 객좌

2019 국외학술답사기


2편

"중국 공산당과 답사팀이 서로 감사해했던 이유"

 

 

 

 

#1. 대릉하 

 

▲ 조양을 가로지르는 대릉하 

 

2일차의 날이 밝았습니다.  

 

숙소에서 대릉하를 걸어 갈 수 있다는 이야기에 아침 산책 삼아 대릉하 나들이에 나섰습니다. 5분 남짓 걸었을까요. 대릉하가 보입니다. 대릉하에 손을 한 번 담구어 보아야겠다는 마음이 일어났지만 탁한 황토빛의 강물을 보니 손을 담그고 싶은 마음이 싹 사라졌습니다. 하지만 넘실대는 강물을 보니 괜히 뭉클한 마음이 올라옵니다. 

 

조양을 가로지르는 대릉하는 홍산문화의 중심 유형을 나눌 때 '대릉하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을 정도로 대릉하는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곳에서 교수님의 강의가 10분 남짓 이어집니다. 대릉하의 의미에 대한 강의를 들으며 다시금 대릉하를 바라보니, 새삼 느낌이 다르게 다가옵니다.

 

#2. 덕보박물관

 

▲ 덕보박물관이 있는 '모용가' 입구에 세워져있는 문. 현판에 '모용가'라고 쓰여있다.  

 

 

대릉하 산책을 마친 후 짐을 차에 싣고 본격적인 2일차 일정이 시작되었습니다. 조양에서는 그동안 가보고 싶었던 덕보박물관과 조양박물관을 드디어 방문합니다. 

 

조양은 선비족들이 터를 잡았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도시 곳곳에 아직 선비족의 흔적을 볼 수 있었습니다. 덕보박물관이 있는 거리의 이름도 '모용가'. 선비족의 '선우(왕)'의 이름을 따서 지었습니다. 이 거리는 화석이나 수석, 각종 옛 골동품들을 파는 상점이 양쪽으로 쭉 늘어서 있었습니다. 볼거리가 많아 두리번 거리기 바쁩니다. 



▲ 덕보박물관 전경.  

 

덕보박물관은 홍산문화전문박물관으로 '왕동력'이라는 개인이 오랜 시간 걸쳐 모은 홍산문화 유물을 전시한 지상 2층, 지하 1층의 사설 박물관입니다. 국보급 유물들이 많아, 홍산문화 연구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덕보박물관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9시경. 그런데, 박물관 직원들이 오늘 방문객을 받지 않는다며 들어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한국에서 여기를 보기위해서 왔다고 말을 해도, 안된다고 완강하네요. 오늘 오후에 방송촬영을 하기 때문에 방문객을 받을 수 없다고 합니다. 박물관 관장까지 나서서 못 들어 오게 하더군요. 

 

못 보는 것인가 낙심하던 찰나, 우리의 가이드가 나섭니다. 이래저래 말이 오가더니 지하만 보겠다는 조건으로 허락이 떨어졌습니다. 실로 능력있는 가이드입니다.  

 

▲ 덕보박물관 지하 벽면 중 하나에 그려져 있는 홍산문화기 모습. 원형 3층제단은 우하량 2지점으로 추정되는 바, 제천(중국에서는 '제사'라 한다.)의식을 표현한 듯 하다.  

 

덕보박물관의 지하에는 홍산문화시기 모습을 보여주는 각종 벽화나 조형들로 꾸며져 있었습니다. 박물관 쪽에서는 우리 답사팀에게 문화해설사를 한 명 배치, 전시물을 하나하나 설명을 해주었는데요, 우리 쪽 연구원의 통역을 통해 들은 그녀의 한마디 한마디에 우리 답사팀의 열띤 호응이 이어지자 점점 목소리가 커지고 말이 길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결국, '오늘은 보여줄 수 없다'고 했었던 2층으로 우리 팀을 안내합니다. 

 

덕보박물관은 홍산문화 전문박물관이라는 명칭답게 놀라운 유물들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사진을 찍지 못하게 하여 많은 것을 남겨오진 못하였지만, 같이 보고 싶은 유물 몇 장을 올려둡니다.

   

▲ 소하연문화시기 '卍' 자문 토기. 국가문물 2급으로 지정되었다. 

  

▲ 삼원오행형 옥기. 중국에서는 勾云形옥패라고 부른다. 중국 국가 1급문물이다. 

 

▲ 마고3신상. 역시나 1급문물로 지정되어 있다.  

 

덕보박물관에서 가장 주목해야하는 유물은 바로 이것. 마고삼신상입니다. 중국에서는 '三女抱座陶像'으로 칭하며, 국가 1급 유물입니다. 사진으로만 보던 이 유물의 실물을 직접 보자, 심장이 마구 뛰었습니다.

 

요서, 요동지역 뿐 아니라 한반도와 일본지역까지 후기구석기 시대부터 많은 여신상이 발견되는데요, 이 여신상들은 과거 동아시아지역에 널리 퍼져있었던 여신신앙, 즉 마고신앙을 의미합니다. 마고여신은 여신이라 불리지만 인격신이 아닌, 기氣에너지를 상징하며 이런 내용은 한민족의 창세신화인 마고신화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마고여신 3명이 함께 있다는 것은 하나이자 셋인 한국선도의 존재론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런 한민족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 철학이 사상으로만 내려오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홍산문화기의 유물로도 확인 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 '홍산여신도상'으로 명명한 여신상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향로가 설치되어 있고, 기도비를 넣을 수 있는 성금함도 있다. 성금함 속에는 먼저 다녀간 관람객들의 기도비가 들어있었다.   

 

최근 중국은 국가가 나서서 여신상, 남신상에 대한 숭배 문화를 조장하고 있는데요, 이곳에서도 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박물관 한 켠에 홍산문화기 여신상을 배치하고, '홍산여신'이라는 칭호를 달아 사람들이 향을 피우고 기도를 할 수 있게 해 놓은 것 입니다. 여기가 사설박물관이니까 이렇게 해놓을 수 있다고 생각하시면 오산입니다. 이후 3일차, 4일차 이어지는 다시보기에서 국가급 박물관, 성급 박물관에서도 이와 같이 꾸며 놓았음을 보여드리겠습니다.   

 

▲ 덕보박물관 왕동력 관장. 도록에 저자 친필싸인을 하고 있다.   

 

마침 덕보박물관의 왕동력관장이 7월에 새로운 홍산문화 도록을 내었는데, 새로운 유물이 꽤나 많이 실려 있었습니다. 우리 팀에서 여러 사람이 제법 구매를 하자 왕동력관장이 직접 나서서 한권 한권 이름과 메시지, 저자 사인을 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박물관을 개방하지 않는다는 것을 설득하여 지하 층만 보겠다고 하며 들어갔지만, 결국 마지막에는 박물관 관장과 직원들, 우리 팀까지 모두가 기쁜(!) 결과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 덕보박물관 왕동력 관장과 함께 박물관 로비에서.  

  

#3. 조양 박물관 

 

▲ 조양박물관 전경.  

 

덕보박물관에서 나온 우리는 걸어서 10분거리의 조양박물관으로 이동하였습니다. 2층으로 이루어진 박물관은 그다지 크지 않았습니다. 조양은 홍산문화 뿐 아니라 많은 청동기 유물이 발견된 곳이라 기존에 알려진 유물 외에 새로운 유물이 전시된 것이 있을까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그렇지는 않아 조금은 실망감이 든 곳입니다. 

 

▲ 조양박물관 입구. 조양박물관의 성격을 알수 있다. 

 

▲ 조양박물관에 설치된 여신숭배부조. 부조 앞에 놓여있는 것은 참배객이 설치한 향로와 제물이다.  

 

조양박물관에서 가장 놀라운 것중 하나는 바로 이 부조입니다. 비슷한 형태를 얼마 전 재개관한 요녕성 박물관에서도 보았는데요, 여신을 모두 모여서 숭배하는 형태의 여신신앙을 나타낸 것입니다. 홍산문화의 여신묘와 각지에서 발굴된 여신상을 토대로, 본격적으로 여신을 중국의 여성모신으로 삼고 역사를 비롯한 모든 체계를 그렇게 잡아가고 있는것이죠. 저희가 갔을 때 저 앞에서 향을 피우고 절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중국이 고고학 발굴 결과를 적극적으로 반영, 신화의 시대를 역사시대로 끌어올리는 등 중국 중심의 역사체계를 만들어가고 있으며, 한발 더 나아가 자국민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홍보를 하고 있지만, 한국 내 상고사연구는 여전히 각종 종교성 시비, 위서 논란 등 다양한 논쟁에 휘말려 답보상태에 머무는 것을 보면 느껴지는 바가 많습니다.  


▲ 옥조우수신상. 치우천왕상이다.  

 

조양박물관에서 볼 수 있었던 또 하나의 주목할 만한 유물은 바로 이것. 

 

홍산문화기 유물로 뿔 달린 신상입니다. 중국에서는 '玉雕牛首神像'으로 소개를 하면서 이 상의 의미나 해석을 따로 하지 못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바로 치우천왕을 나타냅니다. 치우상이지요. 치우천왕과 뿔, 소는 깊은 관련이 있는데요, 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다음 글을 읽어보시기를 권합니다. 

<스사노오가 이끄는 무사·제철세력의 수호신 문제> 읽어보기(클릭) 

  

▲ 옥인상. 성인여성의 손바닥만한 크기로 평화로운 표정이 특징이다.   

 

이 외에도 신석기시대 옥인상으로 소개되어 있는 이 유물도 눈길을 끌었습니다. 편안한 표정이 마치 수행 후 평화로움을 느끼고 있는 수행자의 모습을 보여주는 듯 했습니다.  

 

#4. 동산취 유지


▲ 동산취유지 사적전시관. 출입문 앞에 붙어있는 하얀 종이에는 전시관이 주말에만 개관한다고 적혀있다.  

 

조양박물관을 끝으로 조양을 떠나 객좌로 이동하였습니다. 객좌에서는 동산취 유지를 보려고 합니다. 

 

동산취 유적은 홍산문화 후기(B.C.3500년 경) 대형 제천단 유적입니다. 

 

이곳에서는 수행하는 여신상의 파편, 배가 불룩나온 임산부 모습과 같은 도소상 파편, 옥기류,제기와 같은 모습을 한 토기 등 다양한 형태의 유물이 발굴되었습니다. 더불어 원형제단이 1기, 원형제단 3개가 함께 있는 대형제단 1기, 방형제단 1기 등 제단도 함께 발굴되었었습니다.

 

2016년 이곳을 방문하였을 때는 유적 전시관도 없었고, 유적까지 가는 도로도 없어서 한참 아래 마을에서 유적까지 30분 이상 걸어올라갔었습니다. 그 때 버스로 돌아오는 길에 잠깐 사진을 찍는 사이, 일행에서 낙오가 되어 얼마나 헤맸는지 모릅니다. 말도 안 통하고 전화도 안 되었던 그 기억을 떠올리면 아직도 아찔합니다.  

 

그런데, 3년 만에 다시 찾은 동산취유적은 많이 변해있었습니다. 유적 앞 까지 한번에 갈 수 있는 도로도 만들어졌고, 심지어 유적전시관도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찾아오기 쉽게 도로를 내고 전시관을 세워 홍보를 하는 것 입니다. 

 

이렇게 바뀐 모습을 보니, 중국이 황하문명을 중화문명의 뿌리라고 여겼던 기존의 입장에서 홍산문화로 대표되는 요서지역의 수준높은 신석기 문화로 중화문명의 뿌리를 바꾸고 있으며 이제는 이를 본격적으로 알리고 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 전시관 입구에 들어서면 세워져 있는 조형물. 양팔을 하늘로 뻗고 손바닥을 위로하여 무언가를 받드는 듯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전시관은 주말에만 개방하는 특이한 전시관이었습니다. 저희가 간 날은 목요일. 전시관이 문을 여는 날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능력자인 우리 가이드님의 활약으로 특별히 전시관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전시관 문을 열고 들어가자마자 여성을 앞세운 조형물이 눈에 띕니다. 이곳에서도 여신상이 발견이 된 바, 여성을 앞세운 것이라 추측합니다. 전시물은 동산취 유지에서 발굴된 옥기와 토기, 동산취유적에 대한 영상설명 등이 대부분이었습니다. 발굴된 진품은 대부분 요녕성 박물관으로 옮겨져 있고, 이곳은 복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습니다. 

 

▲ 동산취 유적 전경. 가운데를 기준으로 왼쪽 방형 부분은 아직 발굴을 하지 않은 부분이다.  

  

이곳에서도 역시 문화해설사가 붙어서 하나하나 자세히 설명을 해주었습니다. 역시나 리액션이 뛰어난 우리팀의 열렬한 반응에 이 해설사 분 역시 설명이 더욱 자세히지기 시작했습니다. 

 

전시관 내부는 개관한지 얼마 안되었는지 새집 냄새가 심하게 났고, 눈이 따가워서 눈을 뜰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도저히 숨을 쉬기조차 힘들어 해설사의 길고 자세한 해설을 끝까지 듣고 있을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뛰쳐나와 동산취 유적 앞에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한숨을 돌립니다. 

 

▲ 동산취 유지 입구.  

 

이제 유적으로 올라갑니다. 유적은 전시관에서 걸어서 10분 정도 걸리는 곳에 있습니다. 이곳은  주변보다 지대가 살짝 높은 구릉에 있어 걸어가는 내내 오르막길을 걸어야 했습니다. 이렇게 제천단과 뒷 시기 제천단의 역할을 하는 고인돌, 제천사, 솟대, 선돌 등은 구릉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를 '구릉성 제천시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동산취 유지는 사람 키의 두 배쯤 되는 초록색 철제 울타리가 둘러져있었고, 철문은 굳게 잠겨있었습니다. 지난 2016년 방문하였을 때도 사적비와 굳게 잠긴 철문만 바라보고 돌아가야 했는데 말이지요. 구릉인지라 철망에 매달려도 내부를 전혀 볼 수 없었습니다. 이번에도 철문만 보고 지나가는구나 싶은 생각에 아쉬움이 한가득이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유적을 관리하시는 분이 철문을 열어줍니다. 들어가도 된다고 합니다. 이런 기적같은 일이! 동산취 유적 내부를 볼 수 있다는 마음에 한달음에 올라갑니다.

 

나중에 어찌된 일인지 물어보니, 우리팀이 유적 전시관을 방문했을 때 이 지역 공산당 간부도 이곳을 보기 위해 왔다고 합니다. 공산당 간부도 전시관이 주말에만 여는지 모르고 왔다가 우리팀 덕분에 전시관 내부를 볼 수 있었고, 우리는 이들 덕분에 유적의 내부를 볼 수 있게 된 것이지요. 이들은 우리팀 덕분에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다고 하고, 우리팀은 이들 덕분에 역시 좋은 구경을 할 수 있었으니 이야말로 서로에게 좋은 인연이 되었습니다. 

 

▲ 동산취 유지 내부에서 바라 본 앞쪽 풍경. 저 멀리 강이 흐르고 있다. 

  

입구에서 살짝 가파른 길을 올라와 앞쪽을 바라보니 조망이 탁 트여있어 주변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어 매우 좋습니다. 제천단이 구릉에 자리잡은 이유를 알 수 있을 듯 합니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중국이 이곳을 발굴하고 이후 관리하면서 유적의 3면에 나무를 심어 경계를 표시해 놓은 것입니다. 사람 키의 몇배가 넘어가는 큰 나무들 덕분에 구릉성 제천시설이 가진 특징을 전혀 살리지 못하고 있었으니까요. 오히려 시야가 차단되어 매우 답답함을 주고 있었습니다. 

 

▲ 동산취 유지 원형제단 1기의 복원 모습. 

 

동산취 유지는 대부분 풀이 종아리 높이까지 길게 자라있어 제단이나 건물 터 등을 구체적으로 알 수는 없었습니다. 다만, 원형제단 1기는 그 형태를 복원해 놓았더군요. 아쉬운 마음도 있지만, 유적 내부에 들어가서 그 기운을 느껴볼 수 있었다는 것 만으로도 큰 소득이었습니다. 

   

▲ 객좌현 박물관 입구.  

 

동산취 유지를 마지막으로 둘째 날 일정은 끝이었습니다. 그런데, 동산취 유지에서 받은 객좌현박물관 리플렛에 나와 있는 유물 하나가 우리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 유물을 직접 보고싶었던 우리는 객좌현 박물관의 위치를 전시관 담당자에게 물어보니 차로 15분 정도의 거리라고 하더군요. 동산취 유지를 관리하는 팀이 그곳까지 관리하는지라 우리팀이 지금 가겠다고하면 미리 전화를 해 놓겠다고 합니다. 

 

매우 고맙고 친절한 말이지만, 한편으로는 '너희의 동선은 우리가 다 체크하고 있다'라고 느껴졌습니다. 아마도 첫째날 중국 출입국 관리소에서 연락이 와서 우리팀이 언제 호텔에 들어가는지 체크를 하고 밤늦게 찾아와 우리팀 모두의 여권과 비자를 일일히 대조한 후 컴퓨터에 기록을 하였다는 말이 생각났었기 때문이겠죠. 이곳이 공산국가라는 점을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답사팀의 누군가가 말하기를 '한국에서 온 단체관광객이 최근 한·중간 예민한 부분인 상고사와 관련있는 곳만 골라다니는 것은 중국 측에서 예의주시할만 한 점'이라며, 이런 일이 종종 있다고 합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객좌현 박물관으로 향했습니다. 

 

객좌현 박물관은 어느 건물의 한 층을 쓰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와 달리 중국은 그다지 크지 않은 현의 박물관은 건물의 한 층을 쓰는 정도의 소규모로 운영되기도 합니다. 

 

객좌현 박물관에는 특히 청동기가 많이 전시되어있었습니다. 명도전도 볼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리플렛에서 보았던 유물은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담당자에게 리플렛을 보여주며 그 유물의 전시유무를 물어보니 이것은 전시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기대했던 마음이 무너지며 탄식이 나옵니다. 

 

객좌현 박물관을 뒤로하고 숙소가 있는 능원으로 이동합니다. 객좌에서 능원까지는 50분 정도 걸리는 거리입니다. 

 

3일차는 그 유명한 우하량 유적입니다. 도로가 없었던 곳에 순식간에 도로가 생겨있고, 전시관이 없었던 곳에 전시관이 세워져 있는 등, 하루가 다르게 변해가는 요서지역인지라 중국 동북공정의 계기이자 핵심이었던 우하량은 어떻게 바뀌어 있을지 궁금하기 그지 없었습니다. 당장이라도 가고 싶은 마음을 가만히 누르며 답사 2일째를 정리해봅니다.

 

√ 다음편 예고 :: 2019 국외답사 다시보기 3일차 - 우하량 유지 

 

 

 



 

 

등록자

관리자

등록일
2019-11-0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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