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동북공정의 시작
1978년 개방 이후 중국사회는 급속한 자본주의화 추세 속에서 소수민족의 이탈 문제가 대두됨에 따라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에 대한 국가적 필요가 높아졌고, 이에 따라 소수민족들의 역사문화를 중원의 역사문화로 끌어안기 위한 역사공정 작업을 시작하였습니다.

중국 측이 진행한 여러 지역의 역사공정들 중에서도 그 중심은 단연 동북지역의 역사공정, 곧 동북공정이었습니다. 중국 측이 동북지역의 역사공정에 주목하게 된 많은 요인들 중에서도 가장 결정적이고도 중요한 이유는 1980년대 이후 요서지역, 곧 내몽고 동부 및 요녕성 서부 지역에서 확인된 일련의 후기 신석기~청동기문화, 특히 후기 신석기 또는 동석병용기문화인 홍산문화, 전기 청동기문화인 하가점하층문화가 현재의 중국 영토 내에서 확인된 여러 상고문화 중 가장 오래되고도 가장 찬연하여 중국문명의 시원이자 통일적 다민족국가론의 중심으로 부각되었던 때문이었습니다.
요하문명론의 근본적 오류
중국 측의 요서지역 상고문화 연구는 ‘요하문명론’으로 가닥을 잡아갔습니다. 요하문명론에서는 홍산문화의 일부 후예가 중원 일대로 남하하여 은상殷商문화를 이루었다고 보았는데, 여기까지는 문화의 흐름에 맞기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문화의 흐름을 거꾸로 뒤집어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의 주체를 선상족先商族(은상의 선대), 홍산문화의 성격을 ‘선상先商문화(은상의 선대 문화)’로 바라보았던 점입니다. 은상을 기준점으로 하여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를 해석하는 오류를 보인 것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선상족의 실체에 대해서는 중화민족의 시조로 알려진 황제족黃帝族을 내세웠습니다. 또한 중국 측은 은상문화의 성격을 ‘예제禮制문화’로 바라보기에 선상문화인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 또한 내용적으로 예제문화로 바라보았습니다. 중국 측은 은상문화를 예제문화로 보면서도 내용적으로는 샤머니즘(薩滿敎, 무교巫敎)으로 보기에 홍산문화나 하가점하층문화의 예제문화 역시 내용적으로 샤머니즘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요컨대 중국 요하문명론의 기본 시각은 ‘홍산문화=예제문화(무巫)=선상문화론’으로 정리됩니다.
요하문명론의 동진 이론, 장백산문화론
요하문명론의 요체인 ‘홍산문화(예제문화·선상문화)론’은 애초 중원이나 요서 지역에 대한 이론으로 출발하였으나 점차 요하문명의 동쪽, 곧 요동·한반도 지역으로도 확대되었고 이 과정에서 요하문명의 동진 이론으로서 장백산문화론이 등장하였습니다. 장백산문화론은 1990년대 중반 이래 요하문명론의 한축으로서 진행, 동북아에 대한 중국의 역사·문화적 귀속성을 뒷받침하는 이론으로서 역할해오고 있습니다. 장백산문화론의 기본 구도는 한민족(예맥족)계의 종족적, 문화적 의미를 철저히 배제한 위에 종족적 주체로 숙신계(후금·청대 이후 화하족(한족)화하였기에 화하계로 인식), 문화적 주체로 화하계를 드는 방식입니다.
장백산문화론과 요하문명론의 연결고리, 기자조선
이러한 장백산문화론과 요하문명론이 연결되는 중간 고리는 다름 아닌 기자조선입니다. 한·중간 역사 논쟁의 주요 사안인 기자조선 문제의 뿌리는 중국 고대 문헌 중의 기자동래설, 또 전근대시기 한국인들이 중국의 기자동래설을 수용하여 만들어낸 한국 측의 기자조선 인식입니다. 여기에다 근대 이후 중국 고고학의 발달로 문제가 크게 증폭되었습니다. 1920·30년대 은허의 발굴로 은상이 실재한 나라였음이 확인되었고, 1970년대 말·80년대 초 이후에는 요서지역 상고문화가 등장, 은상계 문화로 해석되었습니다. 단순히 고대 기록에 의지한 기자조선상과 고고학에 뒷받침된 기자조선상은 달라질 수 밖에 없습니다. 중국학자들은 확신에 차서 한·중의 문헌기록과 고고학 자료를 뒤섞어 화려한 은상문화가 미개한 요동·한반도 지역으로 전파되었음을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특히 1970년대 말·80년대 초 이후 동북공정은 기자조선 연구를 촉발시켰 습니다. 동북공정 요하문명론의 ‘홍산문화(예제문화·선상문화)→하가점하층문화→은상문화’라는 은상족 중심의 역사인식에 따라 은상문화의 동북지역 전파를 담당했던 것으로 믿어졌던 기자조선의 존재가 부각된 것이었습니다. 요하문명론의 기자조선 연구는 기왕의 기자조선 연구와 달리 단순한 은상세력의 동북 이주가 아니라 ‘홍산문화(예제문화·선상문화)’를 본질로 하는 은상문화 전파론에 초점이 맞추어졌습니다. 이렇게 요하문명론의 기자조선 연구는 ‘홍산문화(예제문화·선상문화)론’이라는 분명한 계통 인식에 의하였고 이를 국가 차원으로 확정해가는 방향이었기 때문에, 기자조선으로써 단군조선을 대체하고 기자조선사를 한국사가 아닌 중국사로 바라보는 변화가 있었습니다. 기왕의 기자조선 연구와 달리 한국사의 뿌리를 말살해가는 방향이었던 것입니다.
한국학계의 대응과 앞으로의 방향성
요하문명론의 기자조선 인식에 대한 한국학계의 대응은 매우 미진한 편으로 그 근본 원인은 한국학계가 단군조선이나 기자조선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정립하지 못하였기 때문입니다. 중국 측의 기자조선 인식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단군조선·기자조선에 대한 명확한 입장 정립이 필요하며, 단군조선·기자조선에 대한 입장 정립을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중국 측이 요하문명론의 첫머리로 내세운 ‘홍산문화(예제문화, 선상문화)’를 정확한 시각으로 교정하는 일이 필요합니다.

중국 측이 명백한 선도문화이자 배달국문화인 홍산문화를 예제문화이자 선상문화로 왜곡하는데서 시작하여 그 본류를 은상으로 연결시킨 후 다시 단군조선을 은상계 기자조선으로 왜곡하였으니 ‘홍산문화(선도문화·배달국문화)’로서의 성격이 분명해질 때, 그 계후 국가인 단군조선상이 분명하게 그려지고 다음 단계로 기자조선 문제도 자연스럽게 풀리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하문명론을 둘러싼 수많은 혼선과 착종을 해결하는 첫 출발점은 언제나 ‘홍산문화(선도문화·배달국문화)’요, 이러한 시각을 견지하고 있는 선도적 역사인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동북아고대역사학회는 이와 같은 인식을 바탕으로 과거 동북아지역을 중심으로 펼쳐졌던 한국 상고·고대의 고유한 사상·문화적 원형성을 연구, 규명합니다. 이러한 연구를 통하여 특히 중국 동북공정의 허구성을 명백하게 밝혀내며, 더 나아가 세계 속에 한국사 및 한국문화의 정체성을 널리 알리고자 합니다.